“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불평등’이다.”

우리 사회에 장애인복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장애인이 불쌍하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대답은 옳지 않습니다. 옳은 대답은 이것입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장애인복지정책은 여전히 동정과 시혜의 관점에 머물러 있습니다. 장애를 장애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개인적인 ‘불행’이라고 치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불행’이 아니라 ‘불평등’입니다. 장애가 없는 시민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부당한 일들을 장애가 있는 시민들은 모든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오랫동안 겪어왔다면 그것을 우리는 ‘불평등’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교육의 불평등, 주거의 불평등, 소득의 불평등...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하는 사회적인 불평등을 이제는 타파해야 합니다.

야무지게 바꾸겠습니다. 정의당을 후원해주세요.

정치를 하기 위해서 정의당에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을 바꾸고 싶은 저의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을 믿으신다면, 그리고 저를 응원하신다면, 그 마음을 정의당으로 보내주실 것을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지금 정의당에 후원이 절실합니다. 지금 당장, 정의당 많이 후원해주세요.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제가 약속합니다. 저 정치하게 해주세요! - 장혜영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불평등’이다.”


우리 사회에 장애인복지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장애인이 불쌍하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대답은 옳지 않습니다. 옳은 대답은 이것입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장애인복지정책은 여전히 동정과 시혜의 관점에 머물러 있습니다. 장애를 장애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개인적인 ‘불행’이라고 치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불행’이 아니라 ‘불평등’입니다. 장애가 없는 시민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부당한 일들을 장애가 있는 시민들은 모든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오랫동안 겪어왔다면 그것을 우리는 ‘불평등’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교육의 불평등, 주거의 불평등, 소득의 불평등...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하는 사회적인 불평등을 이제는 타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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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요' 밀어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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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탈시설 및 자립지원 정책이란?


장애인에 대한 활동지원이 오직 당사자와 그 가족의 몫으로 전가되어있는 현실에서 장애인들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유를 박탈당하며 장애인거주시설로 보내지곤 합니다. 그렇게 3만여명의 장애인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 삶의 주도권을 잃은 채 하루하루를 시설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인 탈시설 정책이란 그 3만여명의 장애인들이 모두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정책이며 지금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누구도 다시 시설로 보내지지 않도록 장애인수용시설을 모두 폐쇄하고 지역사회의 물적, 인적 인프라를 전면적으로 강화하는 정책입니다. 국가주도의 탈시설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시설을 퇴소한 장애인들에게 24시간활동지원서비스를 포함하여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전방위적인 자립지원정책을 ‘지금 당장’ 실시하는 것이 이 정책의 골자입니다.



장애인탈시설 및 자립지원 정책이 필요한 이유


모든 시민들은 응당 지역사회에서 자유와 존엄을 누리며 살아갈 평등한 권리를 갖습니다. 장애가 있는 시민이라 해도 결코 예외는 아닙니다. 장애인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입니다. 탈시설은 단지 시설에 살던 3만여명의 장애인들이 물리적으로 지역사회로 나온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탈시설은 지금껏 부당하게 장애인을 차별하고 격리해왔던 우리 사회의 관행과 제도를 반성하고, 누군가의 ‘가족’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당당한 ‘시민’으로서 장애인의 권리를 확립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탈시설정책은 결국 장애당사자의 가족들의 희생을 가중시킨다?


그렇지 않습니다. 탈시설이란 시설에 보내졌던 장애당사자가 누군가의 가족으로서 다시 원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지역사회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없는 장애인이라도 마음 놓고 탈시설할 수 있는 장애인복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정의당과 장혜영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탈시설 정책입니다. 가족이 아니라 사회가 돌보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탈시설입니다.



우리 사회의 현주소


2008년, 서울시는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탈시설 욕구조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를 기반으로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를 설립했습니다. 2013년에는 전국 최초로 시설거주 장애인 600명의 탈시설을 지원하는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5개년 계획(2013~ 2017)」을 발표해 시행했고 현재는 「2차 탈시설화 5개년 계획」을 수립해서 이행 중입니다. 뒤이어 「전주시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계획(2015~2019)」, 대구시의 「시설거주장애인 탈시설 자립지원 추진계획(2015~2018)」, 광주시의 「탈시설 자립생활 지원 5개년 계획(2017~2021)」이 발표되었습니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장애인 지역사회 정착생활 환경조성을 위해 탈시설지원센터 설치, 자립지원금 지원 등의 국정과제를 선정한 바 있습니다.


2019년 7월에는 정의당의 윤소하 의원이 대표로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발의하였습니다. 개정안에는 장애인탈시설의 지원 방안과 탈시설에 있어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 9월 22일, 국무총리에게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위해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장애인 탈시설 추진단을 구성하고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에 10월 2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은 환영 입장을 밝히는 성명과 함께 정부가 국가 차원의 로드맵 마련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장혜영 인터뷰 전문보기


장혜영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입니다.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장혜영 안녕하십니까? 저는 정의당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혜영이라고 합니다.


정의당에 오기 전에 여러 가지 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활동을 했는지 설명해 주겠습니까?


장혜영 정의당에 오기 전에 저는 늘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최근에 했던 작업은 다큐멘터리를 찍고 책을 쓴 뒤 그것을 가지고 대중 강연이나 GV(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어른이 되면>이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 많은 둘째언니>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 다큐멘터리를 시작했던 겁니까?


장혜영 저한테 “왜 <어른이 되면>을 만들었냐?” 그렇게 물어보면 저는 “살려고 만들었다.” 그렇게 대답을 하곤 합니다. 저의 한 살 어린 여동생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그 이유로 어렸을 때 일찌감치 시설에 보내지게 되었습니다. 동생의 장애와 그로인해 동생이 시설에 보내진 일을 통해서 저는 꽤 일찍 가족의 해체를 경험했는데, 이런 경험들이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랜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그런데 ‘장애라고 하는 것이 우리 집안의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불평등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변화를 촉구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변화를 촉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니까 ‘동생의 탈시설과 함께 탈시설 이후에 우리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서 공유하고 문제를 제기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습니다.


장혜정 씨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장혜영 그게 진짜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어 만약 제가 비장애인인 누군가를 섭외한다면 구두로 이야기하고 OK하면 촬영동의서에 사인 받아서 끝나는 깔끔한 문제지만, 혜정의 경우에는 이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고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할지 훨씬 섬세한 접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찍기 전에는 유튜브를 통해서, 그리고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에는 영상을 찍고 같이 보는 행위에 대해서, 혜정이 어떻게 느끼는지, 좋아하는지, 적극적인지, 이런 것들을 살피기 위해서 노력을 했습니다.


살펴본 결과 장혜정은 제가 알고 있는 그 누구보다도 명확한 나르시스트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혜정은 찍히는 것도 좋아하고, 찍힌 자기를 보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들이 찍힌 자기를 보면서 좋아하는 것도 좋아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어서 그 신뢰 하에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어른이 되면>은 제가 단언하건대 장혜정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영화일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어디 강의를 간다. 같이 가자”라고 혜정에게 이야기하면 안 가는데 <어른이 되면> 보러 가자고 하면 가기 때문입니다. ‘이건 굉장히 명확한 하나의 소통이다. 우리의, 계약서보다 더 확실한 소통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언니가 시설에 살던 장애인 동생을 데리고 나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되게 놀라워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동생의 탈시설을 지원하고, 함께 했던 겁니까?


장혜영 제가 동생을 데리고 시설을 나오고, 이후에 그와 관련된 활동들을 활발히 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즉, ‘언니가 동생을 위해서 희생한다. 부모도 모자라서 형제자매가 희생한다’라는 프레임으로 저희를 바라보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마음이신지는 알겠지만, 걱정해주시는 것은 고맙지만, 그건 제가 하는 활동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이타심에서 시작된 프로젝트가 아니라 굉장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프로젝트였기 때문입니다. 장혜정은 제 동생이지만 만약 제가 가족의 눈으로만 혜정을 바라봤다면 아마 시설에서 혜정을 데리고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지금처럼 사회 제도나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탈시설 한다는 것은 가정으로 장애인이 돌아온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을 위한 자리가 내 곁에 없는데 이 사람이 가정으로 돌아오는 것은 내 삶에 대한 위협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어떤 가족들은 탈시설을 극렬히 반대합니다.


그런데 가족의 눈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눈 혹은 시민 대 시민의 눈으로 동생의 삶을 바라봤을 때 ‘탈시설이란 선택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인권을 위한 당연한 결정이어야 한다’라고 느끼게 됐습니다. 되게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부분은 누군가를 엄청나게 사랑하면서, 동시에 엄청나게 차별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동생을 사랑하고 좋아했고 또 안타깝다고 여겼지만, 제 삶을 바라보는 눈으로 동생의 삶을 바라보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 똑같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이라고 배워 왔지만 사실 제 마음 속에는 장애인 시민과 비장애인 시민이 따로 있어서, 비장애인 시민이 갖는 모든 권리를 장애인 시민이 갖지 못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 하면 안 된다. 네게 싫은 것은 나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 우리 법체계의 기본이고 ‘내 삶에서 내 동생에게 일어났던 일이 일어난다면?’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자유의 박탈인데, ‘왜 내 동생의 삶에서 그런 격리가 일어났을 때 나는 그것이 심지어 더 나은 보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시민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이것은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이타심이 아닌, 이기심의 프로젝트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저는 태어난 지역사회에서 자연스럽게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권리가 모든 시민의 권리이기를 바라는 것이지 비장애인만 누리는 운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회를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 권리로서의 일상을 누리고 싶기 때문에 동생의 탈시설을 한 명의 시민으로서 지원한 것이고 그래서 다른 시민들도 충분히 이 문제를 자기 문제로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 정도는 된다’ 그렇게 믿습니다.


<어른이 되면>이, 자립이라는 말의 의미가 그냥 ‘혼자 산다. 혼자 독립한다’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라는 것을 잘 보여줬던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합니다.


장혜영 기쁘네요!


가족의 희생이 아니라 말씀하신 고민들을 담고자 했던 것이 느껴졌는데, 한편으로는 혜정 씨에게 혜영 씨가 없었다면 탈시설이 가능했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장애인들이 ‘운 좋게(?)’ 이런 생각을 가진 가족을 만나지 않더라도 자립할 수 있으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장혜영 ‘제도적인 결단이 분명히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종종 비슷한 장애 가족들에게 부럽단 얘기를 듣습니다. ‘혜정 씨만큼만 됐으면 좋겠다. 나의 자녀가, 나의 형제가’ 이런 종류의 얘기를 하는 분도 계시고 ‘모두가 혜정 씨 언니처럼, 모두가 혜영 씨처럼 할 순 없다’라고 얘기하기도 하십니다. 저는 ‘당연히 그렇다. 그 말씀은 당연히 맞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저처럼 하세요’라던가 ‘혜정 같은 사람만 할 수 있어요’ 같은 것이 아니라 ‘가족이 없는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시설에서 나올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지역사회에 있는 사람들이 상황이 나빠지면 언제라도 시설에 갈지도 모르는, 그 원인 자체를 없애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라는 대화가 제가 하고 싶은 얘기입니다. 탈시설에는, 다른 선진국들의 사례를 봐도 국가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했습니다. '몇 월, 며칠, 몇 시부터 우리 사회에는 시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야한다' 이렇게 그냥 정책적인 아이디어만 내다 꽂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설에서 살아가는 3만 명의 사람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3만 개의 플랜을 가동한다’라는 것에 우리 사회가 동의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24시간 활동지원제도'라든가 '주간활동지원서비스' 같은 정책적인 결단들, 그리고 확실한 예산 사용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탈시설을 완성하는 것은 '완전한 통합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동생이 온몸으로, 제게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쳐준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장애인이 있고 같이 살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세상이 망하지 않아. 같이 살려고 하면 살아지고, 밥을 먹으려면 먹을 수 있고, 잠을 자려면 잘 수 있어’라는 겁니다. 저는 그것을 동생과 같이 살아가는, 함께 존재하는 시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모든 삶을 관통하는,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법과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영향을 미치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나와 다른 사람과도 같이 살아갈 수 있다’라는 신념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저처럼 장애인 형제자매를 둔 사람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어린이들이 누려야 하는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사람이 처음부터 함께 살아가는 것. 학교에서 비장애인들로 가득한 교실에 앉아서 장애인의 날 단 하루만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 됩니다” 이런 종류의 얄팍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과 얼굴을 가진 장애 당사자와 관계 맺는 것을 통해 정말 본질적인 것이 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탈시설의 시작은 '24시간 활동지원제도'고 완성은 '통합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혜정 씨에게 시설생활은 어떤 것이었으며 탈시설은 어떤 의미일 것 같습니까?


장혜영 제가 다큐멘터리 제목을 <어른이 되면>이라고 지었는데 저는 그것이 혜정에게 시설이 무엇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혜정이 시설에서 지낼 때 말버릇이었는데 그때의 혜정은 뭔가를 하고 싶어 할 때 “이것은 못해”라고 하면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라고 물어봤습니다. 시설에서의 삶이 장혜정이라는 한 어른을 끝없이 미성숙한 존재, 끝없이 어른이 될 수 없는 존재로 간주했던 겁니다.


“어른이 되면”이라는 말을 혜정은 제가 생각한 것보다 빠른 속도로 하지 않게 됐습니다. 자기가 충분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의 성인이라는 것을 존중받았기 때문에 학습한 겁니다. ‘나의 의지가 전진할 때, 그것이 타인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존중받아야 된다’라는 것을, 장혜정은 탈시설 이후에 빛의 속도로 습득했다고 느낍니다.


동생이 있었던 시설 말고 다른 시설들에도 인권조사를 나갔는데 그 전에 연수를 받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왜?”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시설 안에서 “왜?”라고 하는 단어가 기능하는 방식이 오직 하나라는 겁니다. 대개의 경우 추궁할 때 사용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떤 느낌인지 알고자 “왜?”라고 물어보는 경우는 없다는 겁니다. 낯선 사람이 와서 “왜?”라고 물어보는 순간, ‘이 사람은 나를 혼내는구나. 나를 압박하는구나’라고 느껴서 얘기를 하고 싶다가도 하지 않을 수 있으니 “왜?”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혜정도 시설에 있을 때는 “왜?”라는 단어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와 함께 산지 약 2년 반 정도가 지난 지금의 혜정은 본인이 나서서 “왜?”, “왜 안 돼?” 라고 말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것이 혜정에게 있어서 탈시설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어른이 되면”에 이은 새로운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왜?”, “왜 안 돼?”


정의당에 입당을 하셨는데 혜정 씨는 뭐라고 하던가요?


장혜영 ‘정의당에 들어가서 제가 더 바빠졌으니까 혜정은 좋아하고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바빠지는 만큼 잔소리를 덜할 테니까요. 제가 아침에 보통 일찍 나가는데 스케줄이 없어서 집에 있으면 가만히 나와서 물어봅니다. “언니 일하러 안 가?” 이렇게 저를 쫓아낸답니다.


정의당에 오시면서 ‘제도정치를 통해서 이것만은 바꿔내고 싶다’ 이런 절실함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 있었나요?


장혜영 활동지원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가 ‘원하는 서비스를 원하는 만큼’이라는 원칙에 입각해있지 않기 때문에 유명무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의 모든 제도, 정책에 있어서 이 원칙을 명확하게 확립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원하는 서비스를 원하는 만큼’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문제는 장애가 아니라 차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위에서 '24시간활동지원제도'도 시행될 것이고 진정한 의미의 '장애등급제' 폐지도 가능해질 것이며 납득 가능한 '탈시설', '통합교육' 이런 것들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사회운동을 하고, 전에 하셨던 것처럼 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하는데, ‘제도정치를 시작해야겠다’라고 마음먹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또 그게 왜 정의당이었을까요?


장혜영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할 때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권력자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아니면 내가 권력을 갖는 것입니다. 저는 권력자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굉장히 열심히 노력했는데 ‘이제는 내가 권력을 가져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됐습니다. 저는 모두에게 정치가 굉장히 편해져서 사람들이 ‘내가 정치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지. 내가 절박하면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도 ‘이제 내가 권력의 길로 나아가 볼까?’라는 생각을 할 때 제 안의 정치혐오를 분명히 마주했습니다. “저는 권력에 관심 없어요”라고 말할 때 사람들이 더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그것을 뚫고 나가고 싶어졌습니다. 권력을 갖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습니다. 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니까, 저는 세상을 바꾸기를 원하니까, 남이 바꿔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테니까, 제가 할 겁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어떤 분께는 낯설게 들릴 테고, 어떤 분은 ‘저거 다 자기 좋아서 하는 거야’라고 말씀하시겠지만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제가 늘려 가면 되는 겁니다.


왜 정의당인가에 대해 답하자면, 일단 제 마음속에 거대 양당은 없었습니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정당은 변화를 원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득권 정당은 변화를 원해도 늘 점진적인 변화만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상황을 변화시키는 커다란 요소들이 생기면 생길수록 기득권을 놓치게 될 가능성도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현상유지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현상유지만으로는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서, 커다란 정치현실의 변화를 원하는 정당이 제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정의당이 내려왔던 모든 선택이 다 제가 동의할 수 있는 선택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당 안에서 가능성을 봤습니다. ‘이 가능성과 제 가능성이 합쳐졌을 때 변화를 만들어낼 훨씬 더 긍정적인 가능성들이 열릴 것이다’라고 생각했기에 이 당을 선택했습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미래를 만들어가는 정당이라는 점을 사람들한테 제대로 보여주고 실제로 그런 정당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이번 총선을 앞두고 중요할 것 같은데요. 21대 총선 어떻게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장혜영 21대 총선은 정치개혁을 위한 총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저희 정의당이 백드롭을 바꿨습니다. 그 슬로건이 굉장히 마음에 드는데 ‘지금 당장, 판을 갈자’입니다. 저는 그 앞뒤로 단어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득권 정치, 판을 갈자. 지금 당장, 정치 개혁’


‘문제로 정의되었던 사람들이 문제를 정의하는 힘을 가질 때 세상은 변화한다.’ 저는 이 말을 정말 좋아하는데, 정의당이 이야기하는 정치개혁의 정신 안에 이 말의 의미가 담겼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개혁을 통해, 문제로 정의되었던 사람들이 문제를 정의하기 위한 권력을 가질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것. 그것이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이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바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감당해 왔고 사람들을 실망시키기도 했지만, 이것을 이뤄낸다면 사람들이 정의당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맡은 직책이 미래정치특별위원회잖아요? 이 이름을 직접 지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의미가 담긴 겁니까?


장혜영 2020년 총선에서 청년들의 맹활약이 반드시 국민들에게 가시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기엔 제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20대, 30대 청년들이 ‘저 사람이 정의당에 있으니까 정의당을 찍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우리가 총선 후보로 가질 수 있기 위해서, 그 관점에서 모든 것들을 재편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이 되면 정의당의 의원으로서 이것은 꼭 바꾸겠다, 무엇이 있을까요?


장혜영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 제일 처음 찾아갈 두 분이 계십니다. 물론 다음 국회에서 볼 수 없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만요.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와 여상규 의원을 찾아가서 “그때 20대 국회에서 하셨던 장애비하발언 사과하세요”라는 얘기를 먼저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외의 299명, 모든 의원을 찾아가서 “장애비하발언을 하지 않겠다”라는 각서를 받아낼 겁니다. 최소한 국회에서만큼은, 약자로서의 정체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발언하는 관행을 뿌리 뽑고 싶습니다. 더 많은 당사자들이 국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그런 활동을 더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장애인탈시설 및 자립지원 정책이란


장애인에 대한 활동지원이 오직 당사자와 그 가족의 몫으로 전가되어있는 현실에서 장애인들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유를 박탈당하며 장애인거주시설로 보내지곤 합니다. 그렇게 3만여명의 장애인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 삶의 주도권을 잃은 채 하루하루를 시설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애인 탈시설 정책이란 그 3만여명의 장애인들이 모두 시설을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정책이며 지금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누구도 다시 시설로 보내지지 않도록 장애인수용시설을 모두 폐쇄하고 지역사회의 물적, 인적 인프라를 전면적으로 강화하는 정책입니다. 국가주도의 탈시설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시설을 퇴소한 장애인들에게 24시간활동지원서비스를 포함하여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전방위적인 자립지원정책을 ‘지금 당장’ 실시하는 것이 이 정책의 골자입니다.



장애인탈시설 및 자립지원 정책이 필요한 이유


모든 시민들은 응당 지역사회에서 자유와 존엄을 누리며 살아갈 평등한 권리를 갖습니다. 장애가 있는 시민이라 해도 결코 예외는 아닙니다. 장애인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모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입니다. 탈시설은 단지 시설에 살던 3만여명의 장애인들이 물리적으로 지역사회로 나온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탈시설은 지금껏 부당하게 장애인을 차별하고 격리해왔던 우리 사회의 관행과 제도를 반성하고, 누군가의 ‘가족’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당당한 ‘시민’으로서 장애인의 권리를 확립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탈시설정책은 결국 장애당사자의 가족들의 희생을 가중시킨다?


그렇지 않습니다. 탈시설이란 시설에 보내졌던 장애당사자가 누군가의 가족으로서 다시 원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지역사회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없는 장애인이라도 마음 놓고 탈시설할 수 있는 장애인복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정의당과 장혜영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탈시설 정책입니다. 가족이 아니라 사회가 돌보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탈시설입니다.



우리 사회의 현주소


2008년, 서울시는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탈시설 욕구조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를 기반으로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를 설립했습니다. 2013년에는 전국 최초로 시설거주 장애인 600명의 탈시설을 지원하는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5개년 계획(2013~ 2017)」을 발표해 시행했고 현재는 「2차 탈시설화 5개년 계획」을 수립해서 이행 중입니다. 뒤이어 「전주시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계획(2015~2019)」, 대구시의 「시설거주장애인 탈시설 자립지원 추진계획(2015~2018)」, 광주시의 「탈시설 자립생활 지원 5개년 계획(2017~2021)」이 발표되었습니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장애인 지역사회 정착생활 환경조성을 위해 탈시설지원센터 설치, 자립지원금 지원 등의 국정과제를 선정한 바 있습니다.


2019년 7월에는 정의당의 윤소하 의원이 대표로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발의하였습니다. 개정안에는 장애인탈시설의 지원 방안과 탈시설에 있어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 9월 22일, 국무총리에게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위해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장애인 탈시설 추진단을 구성하고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에 10월 2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은 환영 입장을 밝히는 성명과 함께 정부가 국가 차원의 로드맵 마련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인터뷰 전문보기 


장혜영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입니다.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장혜영 안녕하십니까? 저는 정의당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혜영이라고 합니다.


정의당에 오기 전에 여러 가지 활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활동을 했는지 설명해 주겠습니까?


장혜영 정의당에 오기 전에 저는 늘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최근에 했던 작업은 다큐멘터리를 찍고 책을 쓴 뒤 그것을 가지고 대중 강연이나 GV(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어른이 되면>이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 많은 둘째언니>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 다큐멘터리를 시작했던 겁니까?


장혜영 저한테 “왜 <어른이 되면>을 만들었냐?” 그렇게 물어보면 저는 “살려고 만들었다.” 그렇게 대답을 하곤 합니다. 저의 한 살 어린 여동생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그 이유로 어렸을 때 일찌감치 시설에 보내지게 되었습니다. 동생의 장애와 그로인해 동생이 시설에 보내진 일을 통해서 저는 꽤 일찍 가족의 해체를 경험했는데, 이런 경험들이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랜 시간을 보냈었습니다. 그런데 ‘장애라고 하는 것이 우리 집안의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불평등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다면 변화를 촉구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변화를 촉구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니까 ‘동생의 탈시설과 함께 탈시설 이후에 우리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서 공유하고 문제를 제기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습니다.


장혜정 씨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장혜영 그게 진짜 어려웠습니다. 예를 들어 만약 제가 비장애인인 누군가를 섭외한다면 구두로 이야기하고 OK하면 촬영동의서에 사인 받아서 끝나는 깔끔한 문제지만, 혜정의 경우에는 이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고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어떻게 느끼고 생각할지 훨씬 섬세한 접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찍기 전에는 유튜브를 통해서, 그리고 유튜브를 시작하기 전에는 영상을 찍고 같이 보는 행위에 대해서, 혜정이 어떻게 느끼는지, 좋아하는지, 적극적인지, 이런 것들을 살피기 위해서 노력을 했습니다. 살펴본 결과 장혜정은 제가 알고 있는 그 누구보다도 명확한 나르시스트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혜정은 찍히는 것도 좋아하고, 찍힌 자기를 보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들이 찍힌 자기를 보면서 좋아하는 것도 좋아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어서 그 신뢰 하에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어른이 되면>은 제가 단언하건대 장혜정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영화일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어디 강의를 간다. 같이 가자”라고 혜정에게 이야기하면 안 가는데 <어른이 되면> 보러 가자고 하면 가기 때문입니다. ‘이건 굉장히 명확한 하나의 소통이다. 우리의, 계약서보다 더 확실한 소통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언니가 시설에 살던 장애인 동생을 데리고 나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되게 놀라워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동생의 탈시설을 지원하고, 함께 했던 겁니까?


장혜영 제가 동생을 데리고 시설을 나오고, 이후에 그와 관련된 활동들을 활발히 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즉, ‘언니가 동생을 위해서 희생한다. 부모도 모자라서 형제자매가 희생한다’라는 프레임으로 저희를 바라보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마음이신지는 알겠지만, 걱정해주시는 것은 고맙지만, 그건 제가 하는 활동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이타심에서 시작된 프로젝트가 아니라 굉장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프로젝트였기 때문입니다. 장혜정은 제 동생이지만 만약 제가 가족의 눈으로만 혜정을 바라봤다면 아마 시설에서 혜정을 데리고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지금처럼 사회 제도나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탈시설 한다는 것은 가정으로 장애인이 돌아온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을 위한 자리가 내 곁에 없는데 이 사람이 가정으로 돌아오는 것은 내 삶에 대한 위협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어떤 가족들은 탈시설을 극렬히 반대합니다.


그런데 가족의 눈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눈 혹은 시민 대 시민의 눈으로 동생의 삶을 바라봤을 때 ‘탈시설이란 선택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인권을 위한 당연한 결정이어야 한다’라고 느끼게 됐습니다. 되게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부분은 누군가를 엄청나게 사랑하면서, 동시에 엄청나게 차별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동생을 사랑하고 좋아했고 또 안타깝다고 여겼지만, 제 삶을 바라보는 눈으로 동생의 삶을 바라보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 똑같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 시민이라고 배워 왔지만 사실 제 마음 속에는 장애인 시민과 비장애인 시민이 따로 있어서, 비장애인 시민이 갖는 모든 권리를 장애인 시민이 갖지 못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 하면 안 된다. 네게 싫은 것은 나에게 하지 말라’ 이것이 우리 법체계의 기본이고 ‘내 삶에서 내 동생에게 일어났던 일이 일어난다면?’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자유의 박탈인데, ‘왜 내 동생의 삶에서 그런 격리가 일어났을 때 나는 그것이 심지어 더 나은 보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시민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이것은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이타심이 아닌, 이기심의 프로젝트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저는 태어난 지역사회에서 자연스럽게 한 인간으로서 살아갈 권리가 모든 시민의 권리이기를 바라는 것이지 비장애인만 누리는 운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회를 살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 권리로서의 일상을 누리고 싶기 때문에 동생의 탈시설을 한 명의 시민으로서 지원한 것이고 그래서 다른 시민들도 충분히 이 문제를 자기 문제로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그 정도는 된다’ 그렇게 믿습니다.


<어른이 되면>이, 자립이라는 말의 의미가 그냥 ‘혼자 산다. 혼자 독립한다’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라는 것을 잘 보여줬던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합니다.


장혜영 기쁘네요!


가족의 희생이 아니라 말씀하신 고민들을 담고자 했던 것이 느껴졌는데, 한편으로는 혜정 씨에게 혜영 씨가 없었다면 탈시설이 가능했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장애인들이 ‘운 좋게(?)’ 이런 생각을 가진 가족을 만나지 않더라도 자립할 수 있으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장혜영 ‘제도적인 결단이 분명히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종종 비슷한 장애 가족들에게 부럽단 얘기를 듣습니다. ‘혜정 씨만큼만 됐으면 좋겠다. 나의 자녀가, 나의 형제가’ 이런 종류의 얘기를 하는 분도 계시고 ‘모두가 혜정 씨 언니처럼, 모두가 혜영 씨처럼 할 순 없다’라고 얘기하기도 하십니다. 저는 ‘당연히 그렇다. 그 말씀은 당연히 맞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저처럼 하세요’라던가 ‘혜정 같은 사람만 할 수 있어요’ 같은 것이 아니라 ‘가족이 없는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시설에서 나올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지역사회에 있는 사람들이 상황이 나빠지면 언제라도 시설에 갈지도 모르는, 그 원인 자체를 없애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라는 대화가 제가 하고 싶은 얘기입니다. 탈시설에는, 다른 선진국들의 사례를 봐도 국가의 강력한 의지가 작용했습니다.

'몇 월, 며칠, 몇 시부터 우리 사회에는 시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야한다' 이렇게 그냥 정책적인 아이디어만 내다 꽂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설에서 살아가는 3만 명의 사람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3만 개의 플랜을 가동한다’라는 것에 우리 사회가 동의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24시간 활동지원제도'라든가 '주간활동지원서비스' 같은 정책적인 결단들, 그리고 확실한 예산 사용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탈시설을 완성하는 것은 '완전한 통합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동생이 온몸으로, 제게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쳐준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장애인이 있고 같이 살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세상이 망하지 않아. 같이 살려고 하면 살아지고, 밥을 먹으려면 먹을 수 있고, 잠을 자려면 잘 수 있어’라는 겁니다. 저는 그것을 동생과 같이 살아가는, 함께 존재하는 시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모든 삶을 관통하는,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법과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영향을 미치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나와 다른 사람과도 같이 살아갈 수 있다’라는 신념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저처럼 장애인 형제자매를 둔 사람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어린이들이 누려야 하는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사람이 처음부터 함께 살아가는 것. 학교에서 비장애인들로 가득한 교실에 앉아서 장애인의 날 단 하루만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 됩니다” 이런 종류의 얄팍한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과 얼굴을 가진 장애 당사자와 관계 맺는 것을 통해 정말 본질적인 것이 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탈시설의 시작은 '24시간 활동지원제도'고 완성은 '통합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혜정 씨에게 시설생활은 어떤 것이었으며 탈시설은 어떤 의미일 것 같습니까?


장혜영 제가 다큐멘터리 제목을 <어른이 되면>이라고 지었는데 저는 그것이 혜정에게 시설이 무엇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혜정이 시설에서 지낼 때 말버릇이었는데 그때의 혜정은 뭔가를 하고 싶어 할 때 “이것은 못해”라고 하면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라고 물어봤습니다. 시설에서의 삶이 장혜정이라는 한 어른을 끝없이 미성숙한 존재, 끝없이 어른이 될 수 없는 존재로 간주했던 겁니다.


“어른이 되면”이라는 말을 혜정은 제가 생각한 것보다 빠른 속도로 하지 않게 됐습니다. 자기가 충분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의 성인이라는 것을 존중받았기 때문에 학습한 겁니다. ‘나의 의지가 전진할 때, 그것이 타인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존중받아야 된다’라는 것을, 장혜정은 탈시설 이후에 빛의 속도로 습득했다고 느낍니다.


동생이 있었던 시설 말고 다른 시설들에도 인권조사를 나갔는데 그 전에 연수를 받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왜?”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시설 안에서 “왜?”라고 하는 단어가 기능하는 방식이 오직 하나라는 겁니다. 대개의 경우 추궁할 때 사용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떤 느낌인지 알고자 “왜?”라고 물어보는 경우는 없다는 겁니다. 낯선 사람이 와서 “왜?”라고 물어보는 순간, ‘이 사람은 나를 혼내는구나. 나를 압박하는구나’라고 느껴서 얘기를 하고 싶다가도 하지 않을 수 있으니 “왜?”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혜정도 시설에 있을 때는 “왜?”라는 단어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와 함께 산지 약 2년 반 정도가 지난 지금의 혜정은 본인이 나서서 “왜?”, “왜 안 돼?” 라고 말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것이 혜정에게 있어서 탈시설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어른이 되면”에 이은 새로운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왜?”, “왜 안 돼?”


정의당에 입당을 하셨는데 혜정 씨는 뭐라고 하던가요?


장혜영 ‘정의당에 들어가서 제가 더 바빠졌으니까 혜정은 좋아하고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바빠지는 만큼 잔소리를 덜할 테니까요. 제가 아침에 보통 일찍 나가는데 스케줄이 없어서 집에 있으면 가만히 나와서 물어봅니다. “언니 일하러 안 가?” 이렇게 저를 쫓아낸답니다.


정의당에 오시면서 ‘제도정치를 통해서 이것만은 바꿔내고 싶다’ 이런 절실함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 있었나요?


장혜영 활동지원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가 ‘원하는 서비스를 원하는 만큼’이라는 원칙에 입각해있지 않기 때문에 유명무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의 모든 제도, 정책에 있어서 이 원칙을 명확하게 확립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원하는 서비스를 원하는 만큼’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문제는 장애가 아니라 차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위에서 '24시간활동지원제도'도 시행될 것이고 진정한 의미의 '장애등급제' 폐지도 가능해질 것이며 납득 가능한 '탈시설', '통합교육' 이런 것들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사회운동을 하고, 전에 하셨던 것처럼 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하는데, ‘제도정치를 시작해야겠다’라고 마음먹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또 그게 왜 정의당이었을까요?


장혜영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할 때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권력자를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아니면 내가 권력을 갖는 것입니다. 저는 권력자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굉장히 열심히 노력했는데 ‘이제는 내가 권력을 가져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됐습니다. 저는 모두에게 정치가 굉장히 편해져서 사람들이 ‘내가 정치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지. 내가 절박하면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도 ‘이제 내가 권력의 길로 나아가 볼까?’라는 생각을 할 때 제 안의 정치혐오를 분명히 마주했습니다. “저는 권력에 관심 없어요”라고 말할 때 사람들이 더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그것을 뚫고 나가고 싶어졌습니다. 권력을 갖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습니다. 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니까, 저는 세상을 바꾸기를 원하니까, 남이 바꿔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테니까, 제가 할 겁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어떤 분께는 낯설게 들릴 테고, 어떤 분은 ‘저거 다 자기 좋아서 하는 거야’라고 말씀하시겠지만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제가 늘려 가면 되는 겁니다.


왜 정의당인가에 대해 답하자면, 일단 제 마음속에 거대 양당은 없었습니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정당은 변화를 원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기득권 정당은 변화를 원해도 늘 점진적인 변화만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상황을 변화시키는 커다란 요소들이 생기면 생길수록 기득권을 놓치게 될 가능성도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현상유지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현상유지만으로는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없는 사람이라서, 커다란 정치현실의 변화를 원하는 정당이 제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정의당이 내려왔던 모든 선택이 다 제가 동의할 수 있는 선택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당 안에서 가능성을 봤습니다. ‘이 가능성과 제 가능성이 합쳐졌을 때 변화를 만들어낼 훨씬 더 긍정적인 가능성들이 열릴 것이다’라고 생각했기에 이 당을 선택했습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우리가 미래를 만들어가는 정당이라는 점을 사람들한테 제대로 보여주고 실제로 그런 정당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이번 총선을 앞두고 중요할 것 같은데요. 21대 총선 어떻게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장혜영 21대 총선은 정치개혁을 위한 총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저희 정의당이 백드롭을 바꿨습니다. 그 슬로건이 굉장히 마음에 드는데 ‘지금 당장, 판을 갈자’입니다. 저는 그 앞뒤로 단어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득권 정치, 판을 갈자. 지금 당장, 정치 개혁’


‘문제로 정의되었던 사람들이 문제를 정의하는 힘을 가질 때 세상은 변화한다.’ 저는 이 말을 정말 좋아하는데, 정의당이 이야기하는 정치개혁의 정신 안에 이 말의 의미가 담겼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개혁을 통해, 문제로 정의되었던 사람들이 문제를 정의하기 위한 권력을 가질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것. 그것이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이 기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바라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많은 것들을 감당해 왔고 사람들을 실망시키기도 했지만, 이것을 이뤄낸다면 사람들이 정의당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맡은 직책이 미래정치특별위원회잖아요? 이 이름을 직접 지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의미가 담긴 겁니까?


장혜영 2020년 총선에서 청년들의 맹활약이 반드시 국민들에게 가시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거기엔 제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20대, 30대 청년들이 ‘저 사람이 정의당에 있으니까 정의당을 찍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우리가 총선 후보로 가질 수 있기 위해서, 그 관점에서 모든 것들을 재편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이 되면 정의당의 의원으로서 이것은 꼭 바꾸겠다, 무엇이 있을까요?


장혜영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 제일 처음 찾아갈 두 분이 계십니다. 물론 다음 국회에서 볼 수 없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만요.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와 여상규 의원을 찾아가서 “그때 20대 국회에서 하셨던 장애비하발언 사과하세요”라는 얘기를 먼저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외의 299명, 모든 의원을 찾아가서 “장애비하발언을 하지 않겠다”라는 각서를 받아낼 겁니다. 최소한 국회에서만큼은, 약자로서의 정체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발언하는 관행을 뿌리 뽑고 싶습니다. 더 많은 당사자들이 국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그런 활동을 더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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